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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미실의 난으로 최후를 맞는 칠숙과 석품의 죽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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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미실의 난으로 최후를 맞는 칠숙과 석품의 죽음

드럼치는한동이 2009. 10. 22. 04:52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MBC TV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에는 등장하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미실의 실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국 고대사 논쟁이 뜨겁다.

그런 미실(고현정 분)이 드라마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공주 덕만의 여왕 등극을 앞두고 난을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여자가 왕이 될 수 없다 하여 난을 일으킨 인물은 칠숙과 석품이다. 극중 칠숙은 미실의 경호를 도맡은 시위장으로 나오고 석품은 미실 일가의 편에서 충성을 바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칠숙과 석품의 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를 미실의 난으로 풀어낼 모양이다. 진평왕이 죽기 1년전 인 631년 삼국사기의 기록을 이렇다.

“왕 53년 여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반란을 모의하였다. 왕은 반란을 알아채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에 목 베고 아울러 9족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갔으나 처와 자식을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리하여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에까지 왔다. 이때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어닳아서 떨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도착하였으나 잡혀 처형되었다.”

이처럼 삼국사기에는 진평왕이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철저하게 반란세력을 제거한 것으로 나타난다. 칠숙은 서라벌 동쪽에 있는 시장에서 사형당하는 기시형(棄市刑)에 처해졌다. 기시형은 많은 사람이 오가며 군중이 보는 시장에서 형벌을 내리고 그 시신을 시장에 버리는 극형이었다.

칠숙에게 내려진 기시형은 김춘추-김유신으로 대변되는 신귀족 세력의 등장과 함께 공주 덕만의 왕위 등극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던 구귀족 세력의 본격적인 쇠퇴를 알리는 첫 사건이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의문이 남는 것은 신라 대등 아래 17관등 중 두 번째였던 이찬의 벼슬이었던 칠숙과 그 보다 하위 관등인 아찬 석품이 난을 일으켜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려 했다는 대목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쟁쟁했던 진골 귀족 가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리 썩 훌륭한 가문의 자손들이 아니었는데도 이른바 쿠데타를 도모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선을 뛰어넘는 무모함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드라마에서처럼 상대등 세종과 설원랑 등 구귀족 세력으로 대표되는 자궁가족의 핵심인물인 미실이라는 한 조각을 화랑세기에서 끄집어낸다면 나머지 그림퍼즐의 완성이 가능할 수 있다.

흥미진진함을 더해가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려낼 또 하나의 재미는 신귀족 세력으로 새로운 연합을 이룬 춘추와 유신에 의해 미실의 꼭두각시로 등장하는 칠숙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는 역사적 사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출처]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910201301228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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